남양주에서 출토된 조선 영조의 딸, 화협옹주의 자취
남양주에서 출토된 조선 영조의 딸, 화협옹주의 자취
  • 강정오
  • 승인 2020.09.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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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협옹주 묘지+출토전경
화협옹주 묘지+출토전경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남양주시와 ()고려문화재연구원(원장 김병모)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의 소생인 화협옹주가 이장되기 전 묘지임을 확인하였다.

화협옹주(和協翁主, 17331752)는 사도세자의 친누나이며,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친고모로 11세에 옹주로 봉작(封爵)되었으며, 영의정 신만의 아들 영성위 신광수(永城尉 申光綏)에게 하가(下嫁)하였다.

옹주는 어머니 영빈 이씨를 닮아 미색이 뛰어났다고 하며 후사 없이 20세에 홍역으로 사망하였다.

석함 일괄유물
석함 일괄유물

현재 이장된 묘지는 신광수와 합장묘로 남양주 평구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2015년 매장문화재로 신고된 목제마()와 석함 1개를 조사하던 중 동일한 석함 1개와 백자명기를 추가 수습함에 따라 1차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번 2차 조사는 남양주시에서 문화재청의 2016년도 긴급 발굴비를 지원받아 진행되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화협옹주의 장지임을 증명하는 묘지와 지석(誌石), 청화백자합 10, 분채(粉彩) 1, 목제합 3, 청동거울과 거울집 묶음, 목제 빗과 직물류가 수습되었다.

호석함출토유물
호석함출토유물

묘지는 회곽묘의 오른편에 유명조선화협옹주인좌(有名朝鮮和協翁主寅坐)’라고 쓰여 있는데 회를 정사각형으로 만들고 글자 안에 먹을 채워 넣었다.

지석은 1매의 석판 앞면과 뒷면, 옆면에 394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옆면에 어제화협옹주묘지(御製和協翁主墓誌)’라는 글이 있어 아버지인 영조가 직접 지은 글임을 밝히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애틋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명기는 화장품류로 추정되는 내용물로 채워진 청화백자합과 분채 등이다.

1호 석함 출토유물(목제 馬)
1호 석함 출토유물(목제 馬)

유기물 자료가 드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실물자료가 거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이번에 발굴된 자료들은 내용물 감정과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조선 시대 왕실 여인들문화를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접시류에는 화장도구도 남아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번 조사결과는 2015년 긴급조사로 수습된 석함 2개와 순백자명기, 칠기명기와 함께 묘지와 지석, 석함 1, 회곽묘(이장) 등이 확인되어 사대부가와 혼인한 왕녀의 상장례를 알려줄 뿐 아니라 영조가 직접 쓴 묘지와 화장품 안료, 용기 등을 수습할 수 있어 학술자료로서 매우 큰 성과를 내었다.

지석
지석

한편, 문화재청과 남양주시에서는 추가발굴조사를 통해 화협옹주묘의 전모를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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